당나라 때 이섭(李涉)은 ‘학림사 승방에 쓰다(題鶴林寺僧舍)’의 3-4구에서 “죽원에 들렀다가 스님 만나 얘기하니, 뜬 인생이 반나절의 한가로움 얻었구려(因過竹院逢僧話, 偸得浮生半日閑)”라고 노래했다.
시구 중 투한(偸閑)은 한가로움을 훔친다는 말이다. 한가로움은 일이 없다고 거저 오는 법이 없으니, 애를 써서 훔쳐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.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노력해야 한가로움의 주인이 될 수 있다. 다 늙어 할 일이 없는 것은 한가로운 것이 아니라 무료한 것이다. 오늘 하루는 또 어찌 보내나 하고 한숨 쉬는 것은 한가로운 상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.
이승소(李承召·1422~1484)가 남긴 시 ‘강정(江亭)’의 한 대목이다. “백년 인생 홍진 길에 발을 잘못 내딛다가, 반나절 녹야당(綠野堂)서 한가로움 훔쳤다오. 짙푸르게 둘러친 산 갠 풍경 환하고, 희게 편 비단 강물 가을빛이 쏟아진다(百年失脚紅塵路, 半日偸閑綠野堂. 翠疊山屛明霽景, 白鋪江練瀉秋光).” 평생을 정치 현장에서 동분서주했던 그가 노년의 어느 날 강가 정자에 올랐다가 가을 햇살 부서지는 강물과 그 빛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숲을 보며 마음이 개운해져서 그 반나절의 투한을 기뻐한 대목이다.
서거정(徐居正·1420~1488)은 ‘만성(漫成)’에서 또 이렇게 읊는다. “티끌 세상 말 올라타 십 년간을 분주타가, 하루의 한가함 훔쳐 흥취가 거나하다. 지난날 관청 일을 마치고 나올 적에, 관복 젖고 땀이 줄줄 흐르던 것보다 낫네(紅塵騎馬十年忙, 一日偸閑趣亦長. 却勝前時衙罷去, 靑衫濕盡汗翻漿).” 관복이 땀에 다 젖도록 분주했던 10년 벼슬살이 중에 하루 얻은 한가로움이라서 더 달고 고마웠던 게다.
이규보도 벗 이수(李需)의 시에서 차운한 작품에서 “하염없이 빠르게 세월은 흘러가도, 다행히 한가함 훔쳐 물러나 한가롭다(漫漫遣景迅徂征, 幸得偸閑退縱情)”라 했다. 바쁘다고 발만 동동 구르면 한가로움은 없다. 내가 없는 한가함은 무료일 뿐이다.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아등바등 싸우고 아웅다웅 짓밟고 그랬을까 싶다. 숲에 어둠이 스미고, 인생에도 황혼이 내린다. 헛발질뿐인 백년 인생이 부끄럽고 민망하다.